첫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이 초토화되고 있다. 독감 때문이다. 한 반의 60% 가량의 원아가 독감으로 등원하고 있지 않다고 하니 사태가 심각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독감은 그 인플루엔자가 맞다. 독한 감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굳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도 여러 곳에서 들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소아과가 있다. 소아과에 가보면 독감으로 방문한 환자들과 부모들이 넘쳐나고 있다. 미어터지는 소아과에서 잠깐 대기하다 보면 A형 독감 판정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이러다 소아과가 독감 전파의 허브가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병원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첫째는 그래도 안 걸리고 어린이집을 잘 다니고 있었다. 단지 아침에 콧물만 흘리고 있는데 좀 오래 되었기에 독감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첫째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날 해열제를 한 번 먹은 뒤로는 안정화되어 더이상 해열제를 먹이지는 않고 있다. 이 정도면 가벼운 열감기 정도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증상이다.
그런데 증상이 약하다면 독감이 아닌 걸까?
둘째를 진찰하러 소아과에 갔다가 간혹 증상이 심하지 않은 독감 환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쉽게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첫째를 데리고 독감 검사를 하러 갔다.
독감 검사 방법은 코로나 검사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긴 면봉으로 코 속을 찔러 넣어야 한다. 안 그래도 어린아이라 검사 통증이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데다 이 검사를 받을 때마다 코피가 나니 분명 편한 검사는 아니다.
검사 초기에는 진단키트에 별 다른 흔적이 나오지 않아서 독감은 아니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독감은 A, B, C 형의 세 가지가 있는 데다 코로나 검사까지 겸하는 키트라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불운에 당첨되었다.
첫째의 진단키트에서 미약한 A형 독감 라인을 확인했다. 아닐 거라 생각했건만 결국 첫째가 독감에 걸린 것이다.
이제서야 아이가 고열이 나기 전부터 밤만 되면 왜 이렇게 내 몸이 심하게 피곤해지나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첫째가 독감 판정을 받은 날 난 콧물과 기관지염, 열과 오환 그리고 두통을 겪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증상이 나타났다. 단순한 감기는 아닐 거다.
확률적으로 보자면 첫째에게서 독감이 옮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어쩔 수 없는 게 첫째가 집에 있을 때는 거의 붙어 지내다 시피 했으니 말이다.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늘 함께였다. 그리고 아이가 고열이 났을 때부터 취침 시간에 열을 계속 체크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 했으니 더욱 전염될 확률은 높았을 거다.
이제 배우자와 함께 갓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둘째는 어떻게 될 것인지가 또다른 걱정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배우자는 목이 간지럽고 두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둘째는 갑자기 열이 높아지고 있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그나마 청정구역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 독감 판정을 받은 원아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도 시작이라는 말이다.
어쨌든 나는 독감 백신을 맞았다!
무려 독감 4가 백신을 지난 가을에 이미 맞아뒀다. 나는 무적이다! 무적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지난 날을 반성할 수밖에 없다. 당해보니 생각보다 꽤나 고통스럽다. 38.5도가 넘는 고열이 이틀 이상 이어지니 답이 없다. 물론 여러 증상이 한 번에 나타난 좀 독한 감기 수준의 증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힘들고 힘든 데다 아이들의 투정과 요구를 받아주는 스트레스를 더욱 증폭시켜서 참으로 고통 속의 나날이 될 것 같다.
사실 첫째도 둘째도 독감 백신은 모두 맞았다. 그래서 첫째의 증상이 약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속은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고 말이다.
여담
독감이 코로나 보다 무서운 건 증상 발현 전에도 전파시킬 수 있다는 점 같다. 그 다음으로 무서운 건 증상 발현 후 12~24시간이 지나야 진단키트로 진단될 확률이 높다는 점 같다. 이러니 누가 독감에 걸렸다고 하면 손도 못 쓰고 그대로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솔직히 코로나보다 무섭다. 지난 집안 코로나 침범은 절반만 희생(?)되고 무사히 막아냈었기에 좀 안일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코로나 예방과 독감 예방은 방법은 같지만 좀 더 세밀하게 해야 되는 것 같다는 점을 아주 잘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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